▲ 김종두 정약용문화교육원 상임이사 전 국방대학교 교수

인간을 일컬어 ‘가치 지향적 존재’, ‘역사적 존재’, ‘사회적 존재’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마치 망망대해와 같아서 각각의 가치기준에 따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정신적 등대 역할을 하는 가치(價値, value)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방향을 선택하는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어떤 부모와 스승에게 배웠느냐,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좌우명(座右銘)과 신조(信條) 등으로 연결된다. 가정의 가훈(家訓)과 학교의 교훈(敎訓)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화’로 인식한다. 그리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때문에 자기 자신이 태어난 내력이나 가문의 족보(族譜), 고향에 대한 이력(履歷)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치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

남양주시는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선생이 태어나고 삶을 마친 곳이다. 그리고 선생은 억울한 누명으로 폐족을 당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처참함 속에서도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5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셨고, 그 속에는 “오직 공정한 마음으로 듣고 보아서, 옳고 옳은 것만 추구해야 한다.”는 ‘유시시구(唯是是求)’ 정신이 들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현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유적지 관리를 통해서 선생을 바르게 알리며 현양(顯揚)하는 일이다.

정약용 선생의 유적은 두 곳에서 관리 운영되고 있다. 한 곳은 57년의 연고와 함께 생가(生家)와 유택(幽宅)이 있는 남양주(南楊州)의 ‘정약용 유적지’이고, 또 한 곳은 유배생활로 18년의 연고가 있는 강진(康津)의 ‘다산유적지’다. 그 중 남양주 유적지는 유년시절부터 관직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해배 후 고향에서 만년시절을 보냈던 모습들이 망라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유소년 시절의 모습과 ‘임청정(臨淸亭)’, ‘망하루(望河樓)’, ‘수오재(守吾齋)’, ‘매심재(每心齋)’, ‘채화정(菜花亭)’ 등을 복원하고, 이를 ‘스토리텔링’화해야 한다.

필자는 국방대학교에서 ‘정약용의 목민 리더십’을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면서 남양주 유적지에서 현지답사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질문들이 있었는데, “정약용선생의 고향이 강진이 아니고 이곳입니까?”, “강진에 있는 유적들과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이렇게 관리합니까?” 등이었다.

현재 남양주의 ‘정약용유적지’는 1985년도에야 복원을 시작했기 때문에 1957년도부터 시작한 ‘다산유적지’에 비해 28년이 늦다. 그러니 그런 질문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의 삶에서 시작과 끝을 담고 있는 남양주 유적지는 일반인과 전문연구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점에서 위상에 맞는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유적지를 통해서 선생을 바로 알리는 교육으로 문화를 진흥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생각에서 ‘정약용 선생 바로알기’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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