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칼럼]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삶’, 그리고 ‘숫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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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두칼럼]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삶’, 그리고 ‘숫자18’

▲ 김종두<br>정약용문화교육원 상임이사<br>전 국방대학교 교수
▲ 김종두
정약용문화교육원 상임이사
전 국방대학교 교수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남양주가 낳은 세계적 인물이다. 유네스코는 18세기후반 부란(腐爛)에 빠진 조선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선생의 개혁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세계기념인물로 선정(2012년)한바 있다. 선생의 삶은 75년의 생애 중에서 부모슬하 3년을 빼면 72년인데, 18년을 주기로 큰 변화를 겪게 되므로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수학(修學)’18년이다. 선생은 4세 때 아버지 정재원(丁載遠, 1730~ 1792)에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22세 4월6일, 초시(진사)에 합격할 때까지 18년이다. 그리고 9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


둘째, ‘정조(正租)와 18년’이다. 선생이 초시에 합격하고 정조와 풍운지회(風雲之會)로 만난 시점은 22세 4월11일이다. 이후 여러 관직을 수행하던 중 노론세력의 천주교 모함으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던 중 한서선(漢書選)을 하사받은 39세 6월12일까지 햇수로 18년이다. 그리고 선생은 23세 때 천주교를 받아들였으나 30세 때 윤지충과 권상연의 ‘진산사건’을 보고 천주교와 절교(絶交)했고, 31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선생이 관직(官職) 생활 기간은 대과에 급제한 28세부터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사직한 38세까지 10년이므로 ‘관직18년’ 표현은 맞지 않다.


셋째, ‘유배(流配)18년’이다. 선생은 40세 때 주문모(周文謨)신부 사건으로 경상도 장기(長?)로 유배(2.27~10.20)되었다가 황사영(黃嗣永) 백서사건으로 다시 한양으로 압송된 후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전배(轉配, 11.5)되어 해배된 57세 9월2일까지 햇수로 18년이다. 특히 선생은 엄동설한에 강진 유배지에 도착(11.23)했으나 거처를 정하지 못하던 차에 동문매반가 주모(酒母)의 도움으로 ‘사의재’ 자리에 거처를 얻었다. 이후 ‘보은산방’, ‘이학래 집’, ‘다산초당’ 등 에서 500여권의 책을 집필했다.


넷째, ‘만년(晩年)18년’이다. 선생이 해배되고 마재에 당도한 날은 57세 9월14일이다. 이때부터 회혼일(回婚日)인 75세 2월22일 영면(永眠)할 때까지 고향에서 만년을 보낸 기간은 햇수로 18년이다. 이 기간은 많은 지인들과 학문적으로 교유(交遊)하면서 저술한 작품들에 대해 완성도를 높인 기간이다.


이렇듯 선생의 굴곡진 삶은 ‘18’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깊다. 이외에도 암행어사를 정조18년에, 강진으로의 유배 이동기간이 18일(11.5~23), 유배생활에서 양성한 제자(다신계)18명, 순조18년(1818년)에 해배되었다. 따라서 ‘18숫자’와 연계하면 선생의 생애와 삶을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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