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 정약용문화교육원 상임이사 전 국방대학교 교수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가치 지향적 삶에서 ‘숫자4’는 유배생활과 연관이 있다. 선생의 유배는 세 차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충남 해미현(海美縣) 정배(1790.3.8.~13)로 한림(翰林)선발과 관련하여 노론측의 억지주장에 맞서다 정조의 노여움을 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경북 장기 유배(1801.2.27.~10.20)로 정약종 책롱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 번째는 전남 강진 유배(1801.11.5.~18.9.2)로 황사영백서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중 강진 유배기간과 연관된 ‘사의재(四宜齋)’, ‘4가치기준(四價値基準)’, ‘거가4본(居家四本)’에 대해 살펴본다.

‘사의재’는 선생이 강진 유배생활을 시작하면서 4년간 거처했던 집의 당호(堂號)이다. 선생이 강진에 도착한 날은 1801년 11월 23일, 그야말로 엄동설한이었다. 더구나 당시 노론의 핵심인물 이안묵(李安默, 1756~1804)이 강진 군수로 있던 터라 감시와 방해가 심했다. 거처를 정하지 못해 자칫 동사(凍死)할 처지에 있던 선생은 매반가(賣飯家) 주모의 도움으로 방 한 칸을 얻었고, 2년쯤 후에 당호를 ‘사의재’라고 한 것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4년간 머물면서 손병조(孫秉藻), 황상(黃裳), 황경(黃?), 황지초(黃之楚), 이학래(李鶴來), 김재정(金載靖) 등 6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선생은 「사의재기」에서 “의(宜)는 마땅함[義]이니, 마땅함으로 스스로를 바로잡는 것이다. 생각[思]은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생각을 맑게 해야 한다. 용모[貌]는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의젓하게 해야 한다. 말[言]은 참아야 하니, 참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말을 그쳐야 한다. 행동[動]은 진중해야 하니, 진중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느긋하게 해야 한다. 이에 이 집을 ‘사의재’라고 이름하였다.”고 기록하였다.

‘4가치기준’은 선생이 큰 아들, 학연(學淵, 1783~1859)의 편지를 받고 답한 내용에 나온다. 당시 학연은 아버지의 유배가 너무 억울하다면서 이른바 ‘꽹과리 상소’를 올린 일이 있는데,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아버지! 홍의호(洪義浩), 강준흠(姜浚欽), 이기경(李基慶) 등에게 해배를 부탁해보시면 어떨까요?”라는 취지의 편지를 아들한테 받고나서 “세상에는 옳은 일을 하고 이로움을 얻는 최상의 등급[是利]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손해를 보는 등급[是害]이 있으며, 그른 일을 하고 이익을 보는 등급[非利]이 있고, 그른 일을 하고 손해를 보는 최악의 등급[非害]이 있다. 나의 해배를 위해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일은 최악의 등급이니 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면서 ‘옳음[是]’, ‘그름[非]’, ‘이로움[利]’, ‘해로움[害]’의 네 글자를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당부한 내용이다.

‘거가4본’은 주자(朱子)가 “화순(和順)은 제가(齊家)의 근본이요, 근검(勤儉)은 치가(治家)의 근본이며, 독서(讀書)는 기가(起家)의 근본이요, 순리(順理)는 보가(保家)의 근본이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선생은 “화목·순종은 집안을 가지런히 다스리는 근본[和順齊家之本]이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은 가정을 다스리는 근본[勤儉治家之本]이며, 책을 읽는 것은 가문을 일으키는 근본[讀書起家之本]이고, 올바른 이치를 따름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循理保家之本]이니, 이 네 가지를 가정의 근본으로 삼아 힘써 실천하라.”는 내용이다.

이렇듯 선생은 가치(價値)를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자녀들을 교육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해배 후 완성한 『목민심서』 「율기」편에 “몸을 닦은 뒤에 정제하고 집을 정제한 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천하의 공통이치이니 고을을 다스리려면 먼저 가정을 정제해야 한다.(修身而後齊家 齊家而後治國 天下之通義也 欲治其邑者先齊其家.”,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고, 처자가 그 훈계를 지키는 집안은 법도 있는 집안이니, 백성이 이를 본받을 것이다(母子有敎 妻子守戒 斯之謂法家 而民法之矣).”라고 기록했다.

저작권자 © 포커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